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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성의 캘리포니안 드림(10) ··· 미국의 현충일을 맞아

엊그제는 미국의 현충일(Memorial Day)이었다. 미국의 남북전쟁(The Civil War)에서 전사한 남북 병사들의 묘지를 단장하던 ‘Decoration Day’에서 유래돼 지금은 모든 전몰 병사들을 기리는 국가 공휴일로 확대 되었다. 건국 이후 250년이 채 안되는 짧은 역사 동안 독립 전쟁에서 부터 크고 작은 전쟁을 치르고 있는 나라인지라 벌써 100만 명이 넘는 전사자들을 해마다 기리는 날이다.

 

매년 5월의 마지막 월요일로 지정되어 날짜가 조금씩 바뀌는데 이유는 역시 미국답게 3일간의 연휴를 즐기기 위함이다. 계절적으로는 9월 초의 노동절까지 3개월간 이어지는 긴 여름 휴가철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기도 하다.

 

내가 사는 캘리포니아의 얼바인 시에서도 기념행사가 열려 두 딸을 데리고 시청 앞에 마련된 행사장으로 향했다.

 

매일 앞을 지나치면서도 몰랐던 사실은 현충일 행사장인 빌 바버 기념공원(Bill Barber Memorial Park)이 얼바인 출신으로 한국전 당시 장진호 전투에 참가했던 미해병 1사단 소속의 Bill Barber 소령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공원이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 2차 세계 대전과 월남전 사이에 낀 한국전쟁은 잘 언급되지 않는 과거사다. 어쩌면 미국 사람들이 잊고 싶어하는 전쟁이다. 그럼에도 얼바인시를 포함하는 오렌지 카운티엔 한국전을 기념하는 갖가지 도로, 공원, 조형물들이 여기 저기 숨어있다.

특히 장진호-미국인들은 일본식 발음인 Chosin Reservior 로 발음한다-전투는 혹독한 추위 속에 중공군의 파상적인 인해전술을 뚫어가며 차후의 성공적인 흥남 철수로 이어지는 미해병 1 사단의 전과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미국과 중국에서 각자 자기들의 관점으로 영화화 한다는 흥미로운 소식까지도 들었다.

 

아무튼 정치적으로 성향을 달리하는 사람들도 이날 만큼은 한 뜻으로 모여 기념행사를 갖는다.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해안 경비대의 현역과 예비역들 그리고 한국전과 월남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전에 참가한 역전의 용사들이 한 곳에 모여 가족에게로 돌아오지 못한 전우들을 기린다. 한국전 참전 용사로 행사에 참가한 할아버지 한 분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아내와 함께 오신 걸 봤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이다.

 

미국은 어쩌면 크고 작은 많은 전쟁들을 통해 국가의 정체성을 찾는 것 같다. 그 것이 미국 내에서 치러진 독립전쟁이나 남북전쟁이든 국외에서 겪었던 양차 대전이나 한국전, 월남전, 혹은 중동전이든 간에 미국의, 더 나아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미국인들은 생각한다. 물론 이런 관점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반드시 좋게 비춰지는 것만은 아니고 미국의 정치적 경제적 국가이익 확대를 위한 변명이라고 보는 이들도 많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 내에서도 현재까지 계속되는 소모적 중동전쟁에 반대하는 소리가 만만치는 않지만 이 날은 이 모든 정치적 견해의 차이를 떠나 대통령부터 어린 아이들까지 전사자들을 기념하고 오후에는 가족끼리 맥주와 바비큐를 즐긴다.

 

그러나 아쉬움이 있다. 내가 사는 얼바인 시가 미국에서는 최초로 두 명의 한국인 시장을 연이어 배출했고 많은 한국분들이 살고 있는 곳임에도 전·현직 시장은 물론이거니와 한국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선거철이면 동네의 대형 한인 교회들을 찾아다니면서 표를 달라고 부탁을 하고 선거 모금을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한인 행사에는 콧배기도 안 보이는 행태를 여러 번 경험 했지만 이건 좀 심하다. 세월이 지나면 한국인 시장들은 잊혀지겠지만 노병 빌 바버(Bill Barber)는 동판에 굳게 새겨진 이름 만큼이나 오래 갈 것 같다.

 

얼마전 디스커버리 채널의 방송을 보니 2009년 영국의 한 연구를 인용하면서, 이름을 붙여준 젖소들이 이름 없는 젖소들 보다 더 많은 우유를 만들어 낸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젖소도 자기 이름을 귀히 여기는데 하물며 인간이야 어떻겠는가. 인간은 다들 자기 잘난 맛에 산다지만 할 일은 해야 할 법이다.

미주 사회에서 최초의 한인 시장 배출 이라는 얼바인이 갖는 위상 때문에 한국의 공중파 프로그램에서도 간혹 이 쪽 정치인들에 대한 방송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름을 내고 싶어하는 건 이해하겠으나 공인으로서 그에 따른 책임이나 의무도 같이 보여주어야 하는 건 아닌가 ? 누구는 60여년 전 머나먼 이국에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들을 위해 피를 흘렸고 그게 고마운-사실 한국 사람들이 고마워 해야겠지만-미국 사람들은 이를 기념하러 동네 공원에 그 전쟁 영웅의 이름을 붙여 주었는데 행사장에 나타난 건 달랑 우리 셋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작렬하는 남 캘리포니아의 오후 햇볕 때문인지 얼굴이 많이 따가왔다.
 

 

 

 

 

 

 

 

 

☞권혁성은?=경북 영일 출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백령도에서 해병대 하사관으로 복무했다. 포스코 경영기획실에서 잠시 일하다 태권도(6단) 실력만 믿고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짝퉁’ 티셔츠 배달로 벌이에 나섰던 미국생활이 17년을 훌쩍 넘었다. 현재는 캘리포니아 어바인에서 선라이즈 태권무도관의 관장·사범을 한다. 합기도와 용천검도(5단) 등 무술실력은 물론 사막에서 사격, 그리고 부기(Boogie)보딩을 즐기는 만능스포츠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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