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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동양(東洋)산책(1)

“이곳의 집들은 모두 수성 아래 자리 잡았다.”

 

지금 제주에는 사람이 많다. 살고 있는 사람도 제법 있지만, 오고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 내국인들이 들락거린 지는 오래 되었고, 이젠 외국인들이 몰려온다. 관광객 수만 해도 최근엔 800만명을 넘어섰을 정도로 제주도는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다.
그래서 더더욱 옛날 제주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이야 마음만 먹으면 우리 아름다운 제주에 쉽게 올 수 있지만, 30여년 전만해도 그리 쉽지가 않았을 뿐만 아니라, 50년 전에는 버림받은 땅이었다. 그 이전에는 더 심했다. 조선 중기 이후에 제주인은 제주도 밖을 나서지 못하게 하는 출도 금지령이 내려져 있었고, 여성들의 출도는 원천 봉쇄됐었다. 그때 제주사람들이 부르는 ‘육지인’들의 눈에는 제주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기이한 인상만 남아있고, 특이함으로만 접근이 됐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내도(來島)하는 것도 장사치나 관리·유배인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그들 중에도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추사(秋史) 김정희다. 그는

 

남쪽 하늘 끝 큰 바다 물가에
영산은 구불구불 서쪽 끝으로 뻗쳐있다.
(朱鳥天邊大海湄,神山蜿蜒走西支.)

 

라며 ‘우연히 지었다(偶作)’라고 읊은 시에서 제주도를 하늘 끝 물가에 자리 잡은 조그만 곳으로 보고 있다. 주작(朱雀)이 나는 듯한 광오한 어휘로 시작했으나, 결국은 바다 끝에 자리 잡은 오지임에랴. 더욱이

 

들 가운데 작은 고을 겨우 말(斗)만하고,
푸른 돌담은 짧은 대울타리와 이어져 있구나.
(野中小治僅如斗,靑石郭連短竹籬.)

 

라며 자신이 살고 있는 “대정(大靜)이 구기(국을 뜨는 도구·국자)만큼이나 작은 마을”이라 하였다. 울타리조차 짧은 대나무만큼 밖에 하지 않다고 한탄인양 내뱉는다. 그런데,

 

이곳의 집들은 모두 수성 아래 자리 잡았고,
수선화는 천 떨기요 또 만 가지로다.
(人家盡依壽星下,水仙千朶復萬枝.)

 

라면서 ‘수성(壽星)’아래 자리 잡은 장수하는 고장이며, 수선화가 만개하는 아름다운 땅임을 얘기한다. 추사가 말한 ‘수성’은 노인성(老人星)이다.
노인성은 별이름으로 얘기하자면, 카노푸스(Canopus)다. 용골자리 α의 고유명이며, 시리우스 다음으로 밝은 별로 초거성(超巨星)이다. 하늘에서 태양을 제외하면 시리우스에 이어 두 번째로 밝은 별이다.

 

동양에서는 이 별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별로 믿었다. 이 별을 보았을 경우 매우 경사스러운 징조로 여겼다. 이 별을 보게 되면 오래 산단다. 그래서일까? 사실 제주인은 장수하였다.
이익(李瀷)의 「성호사설(星湖僿說)」 노인성조에 제주에서 보이는 노인성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제주 목사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당숙 이원진(李元鎭)에게 들은 이야기를 기록하였다. 고려 의종(毅宗) 24년에 노인성이 나타나 왕이 장수하리라는 징조라 하여 큰잔치를 벌였던 일이 있어, 이원진이 제주목사로 있을 때 노인연(老人宴)을 베풀었더니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 140세였고 100세 이상인 사람이 무척 많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노인성을 남극노인(南極老人)이라고도 부르는데, 한국에서는 남쪽의 수평선 근처에서 매우 드물게 볼 수 있다. 중종 때에 제주에 살았던 김정(金淨)의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에도 이 별을 보면 장수한다는 속설이 있으며 한라산에 올라가면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조선시대는 서울 숭례문밖에 노인성단(老人星壇)이 있었고, 경상도 선산 죽림사(竹林寺)에 노인성이 비친다고 하여 사람을 보내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노인성은 북반부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별이다. 이 별을 보았을 경우 나라에 고하도록 했을 정도이니 참으로 보기 힘든 별이다. 그런 별인데도 현재 서귀포 삼매봉 팔각정에만 가면 10월 말부터 3월 말까지 문섬 옆 수평선 위에 떠있는 파란 별을 볼 수 있다.
이는 ‘영주십이경(瀛州十二景)’의 하나인 ‘서진노성(西鎭老星)’을 보면 더 확연해진다. 서귀포 천지연(天池淵) 하류, 서귀포구(西歸浦口)의 높은 언덕 위에 지금은 사라진 서귀진(鎭)이라는 성(城)이 있었다. 이 성에 오르면 앞에는 망망대해가 한눈에 들어오며, 뒤로는 한라산의 웅대한 듯 소담한 봉우리가 시야로 들어온다. 이곳이 불로장수를 상징하는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을 바다 멀리 바라볼 수 있는 자리였다. 또한 그곳은 4·3의 상처를 그대로 간직한 상징물이기도 하다.

 

서귀진의 규모는 주위 251m, 높이 3.6m에 이르는 진성이었다 한다. 1920년대 일체침략 시기까지에는 기와 건물 3동과 성담이 남아 있어, 당시에는 일본군의 관청으로 사용되었다. 제주도 4·3사건이 발생하자 이곳의 성담을 헐어 마을을 방어하는 축성용으로 사용하였고, 이후에는 주거용 건축 용도와 ‘밭담’으로 무분별하게 훼손되어, 지금에는 당시의 성담이었던 담들이 ‘우잣담’과 ‘성굽담’으로 일부 남아 있을 뿐이다. 살아남기 위한 처절함에 문화유산이 송두리째 사라져버린 대표적인 곳이다. 지금은 그나마 복원하려고 한다는 소식에 위안을 삼을 따름이다.

 

노인성이 인간의 수명을 관장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왕은 노인성을 향해 제사를 올리기도 했다. 그래서 그랬을까? 중국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도 ‘송자 강정에 머무르며(泊松滋江亭)’에서 “강과 호수는 깊어서 더욱 희고, 소나무와 대나무는 멀어서 조금 푸른(江湖深更白,松竹远微青)” 곳에 이르러서는, “오늘 저녁은 기주(夔州)를 떠나 강릉(江陵)에 다다랐으니(남극 밖에서 지내며) 달게 노인성이 되려 한다(今宵南极外,甘作老人星)”고 할 정도였다. 두보도 마음속에 노인성을 둘 정도로 동양인들이 노인성을 중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더불어 노인성은 중국 신화 중의 장수의 신이다. 진시황(秦始皇)이 중국을 통일한 후 장안 부근에 수성사(壽星祠)를 세웠는데, 후에 수성은 신선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 노인성은 신선사상을 배경으로 장수신앙에 바탕을 두고 축수용으로 그림이 그려졌다. 수노인도(壽老人圖), 노인성도(老人星圖), 남극성도(南極星圖), 남극노인도(南極老人圖)라고도 한다.
 

 

대체로 작은 키, 흰 수염, 큰 머리, 튀어나온 이마에 발목까지 덮은 도의(道衣)차림을 한 웃음 짓는 노인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손에 두루마리 책이나 불로초, 복숭아 등을 들고 있기도 하고, 나무를 배경으로 사슴이나 학, 선동자와 함께 묘사되기도 한다.
무병장수(無病長壽)를 꿈꾸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꿈이 각인된 것이 ‘노인성’이 아닌가 싶다. 그게 그저 꿈으로만 끝날 지라도 노인성을 볼 수 있는 제주도가 고맙고 아름다울 뿐이다. 그런 제주도를 애정으로 감싸 안았던 추사도 어쩌면 장수는 아닐지라도 무병은 원했을 지도 모른다.

 


허련(許鍊)이 그린 ‘해천일립상(海天一笠像)’의 초상화를 보면 추사도 왼손으로 수염을 어루만지고 오른손으로는 배꼽 근처를 움켜쥐고 있다. 연단도인의 몸짓이라 한다. 여유로움 속에서 단전호흡으로 건강을 관리하는 모습이라 보는 것이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림 속 추사는 단아하면서 정감이 있다. 제주 유배생활을 할 때 모습인데도 초연함이 우러나온다. 그만큼 장수하면서 아름다운 제주 생활을 누린 게 아닐까. 제주에 살면서 장수를 누리는 제주사람들이 있고 수선화가 만연한 아름다운 고향임을 노래한 추사는 진정으로 제주를 사랑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현대사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 우리는 과연 제주를 사랑하고 있을까?

 

 

 

 

 

 

 

☞이권홍은?=제주 출생. 한양대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중국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신종문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는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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