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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준의 '아버지로 살기, 아버지로 죽기'(3)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는) 아버지의 길

아버지란 존재를 접해본 경험이 없기에, 내게 아버지의 길이란 애초부터 없었다. 삶이란 원래 스스로 알아가는 과정이요, 없는 길을 찾아가는 고행의 길이면서 구도의 길이라지만 아버지의 길은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과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아버지의 길을 혼자 고민해 보지만 뚜렷한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친구들이나 동료들에게 묻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다. 자존심 때문이 아니다. 다 아는 아버지의 길을 나만 모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부끄러움과 자괴심, 아버지 없이 자란 티를 내는 것 같아 차마 묻지 못한다.

 

아버지, 이럴 땐 어떻게 했어요?

 

아버지에게 묻고 싶고, 기대고 싶고, 위로받고 싶지만 내게는 아버지가 없으니 그럴 수가 없다. 아버지가 있다고 해서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질문을 한다고 해도 아버지가 답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힘이 된다. 집 뒤에 있는 산처럼 말없이 앉은 채 지켜보고, 지켜준다. 가끔은 화를 내며 소리치기도 하고, 내리치기도 하지만 말없이 앉아 있는 게 보통이다. 그런 아버지를 갖지 못한 사람은 외롭다. 애초부터 빼앗겨 버린 것에 대한 갈증을 형벌처럼 지닌 채 민달팽이로 평생 동안 뚜껑을 그리워하고 동경하며 살아야 하니까.

 

혼자 감당하기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아버지 묘소를 찾아가 위로를 받고 해답을 구한다는 친구가 있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얼마나 큰 존재였는지 새삼 알겠다고 되뇌이곤 한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부러워 견딜 수가 없다. 그 친구는 아버지가 없다는 동류의식을 가지고 내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이겠지만, 그 친구와 나는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아버지를 경험했고, 아버지와 의논한 적이 있기에 돌아가신 아버지와 대화하고, 위안 받고, 해답을 얻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경험이 없었고 가질 수도 없는 나는 그마저도 할 수 없다. 나에게 아버지는 애초부터 없었던, 존재하긴 했으나 내게는 존재하지 않았던 가상적인 존재일 뿐이니까. 그런 존재에게 무슨 말을 걸고, 무슨 이야기를 나누며, 어떤 위안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모든 것을 오직 혼자 싸안고, 결정하고, 감당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나는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두 번째 시집 제목처럼 ‘못난 아비’가 아니라 위태로운, 위험한 아버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에게 묻고 싶다. 그러나 묻지 못한다. "인생은 스스로 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가 아니라 묻을 만한 존재가 내겐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고민스러울 때면 아버지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불민해서 그렇겠지만 아버지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없었다. 어머니에 대한 자료는 수도 없이 많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럴수록 나의 고민은 깊어만 갔다.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자료를 찾아봐도 없고……. 그러다 나는 아버지를 찾았다. 나의 아버지가 아닌 다른 이의 아버지에게서 아버지를 찾은 것이다.

 

 

 

아름다운 동행 또는 아버지 찾기

 

송석영 교장선생님께

 

 

 

내 피 속에 아버지는 없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지워진

 

아버지는 늘 타는 갈증이었지만

 

아버지란 이름은 거부의 대상이었습니다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도

 

아버지로 살면서도 아버지란 존재를 두려워했습니다

 

유복자 콤플렉스

 

 

 

마흔여섯에 나는 아버지를 낳았습니다

 

팬티바람으로 한 이불 속에 나란히 누워

 

차가운 방안 공기

 

입김으로 따뜻하게 데워 서로에게 밀어주면서

 

진눈깨비 날리는 새벽 거리

 

설 깬 눈으로 서로 운전을 하겠다고 실랑이하면서

 

손을 맞잡고 오른 눈 덮인 한라산 계곡과 1,100고지

 

바람과 파도가 하나로 헝클어진 바닷가

 

마주 앉아 세상살이를 주고받는 밥상머리에서

 

나는 아버지를 찾았습니다

 

나의 아버지가 될 수 없는 남의 아버지에게서

 

 

 

노을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

 

영종도로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나는 봤습니다

 

차창에 붉게 타는 노을

 

그러나 찍히는 것은 아름다운 아버지였습니다

 

영하의 바람 속에서 서로에게 장갑을 벗어주며

 

내가 담은 것은 노을이 아니라 아버지였습니다

 

바람 속에서 아버지를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무의도 식당에서 먹은 해물칼국수

 

내 그릇에 담긴 해물들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 아이들에게 하듯

 

조심스레 까서 하나씩 옮겨놓았습니다

 

그리고 내 아이들이 그러하듯이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편안히 졸고 있었습니다

 

 

 

2006년 겨울, 사진을 좋아하는 두 사람이 하루 동안 경험했던 내용을 있는 그대로 시로 옮긴 것이다. 이 시를 쓰면서 나는 많이 울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아버지의 사랑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직장 상사에게서 아버지의 정을 느끼고 그것을 쓰게 고백해야 한다는 게 슬펐다. 그러면서 내 가슴에도 아버지란 존재가 살고 있었구나 싶자 가슴이 저미어 왔다.

 

그날 밤, 이 시를 완성하면서 비로소 내게도 많은 아버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비록 나의 아버지는 아니지만 내게는 너무나 많은 아버지들이 있었다. 내가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왔을 뿐, 내게도 너무나 많은 아버지가 있었다. 그날 찾은 나의 아버지는 한인섭 선생님, 백무범 선생님, 안병욱 교수님, 친구 순정이 아버지, 고말구 신부님, 고(故) 김영돈 교수님, 김병택 교수님, 김영화 교수님, 김홍식 교수님, 오철근 중대장님 등등이다. 그분들의 관심과 사랑이 나를 여지껏 지탱해 주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고, 또한 그분들이 알게 모르게 나에게 아버지의 도리를 가르쳤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 동안 잊고 있었던, 그러나 소중한 나의 기억들을 들춰내 아버지의 길을 모색해보려 한다. 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라서 공감의 폭이 좁을 것이란 생각에 몇 번이나 망설였지만,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야기하려 한다. 

 

이성준은?

 

=제주 출생. 제주대 국어국문학과를 거쳐 단국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작가회의, 단국문인회 회원이다. 제주와 경기도에서 20여년 간 고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시인으로도 등단, <억새의 노래>, <못난 아비의 노래>, <나를 위한 연가>, <발길 닿는 곳 거기가 하늘이고 세상이거니> 등의 시집을 펴냈다. 최근엔 창작 본풀이 <설문대할마님, 어떵 옵데가?>와 소설집 <달의 시간을 찾아서>를 내기도 했다. <이청준과 임권택의 황홀한 만남>, <이야기로 풀어가는 우리 시조>, <읽기만 하면 기억되는 고사성어 365>, <글쓰기의 이해와 활용>, <통섭의 자리에 서서> 등 다양한 전문서적을 펴내기도 했다. 1년 전 고향 제주에 돌아와 제주 관련 글들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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