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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준의 '아버지로 살기, 아버지로 죽기'(1) ··· 버려진 이름, 아버지

“아버지는 한 잔의 술로 눈물을 삼킨다.” 산업사회의 그늘 아래서, 팍팍한 살림살이 속에 주눅들대로 주눅 든 우리 시대의 아버지-. 우리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다. 남자로 태어나 사내이자, 남편으로 세상에 복무하며 한 가정을 책임진 우리 시대 아버지. 50대 초로(初老)의 길에 접어든 이성준 시인의 펜을 빌어 우리들의 아버지를 그려본다. 5월 가정의 달을 맞는 <제이누리>의 새 연재 칼럼이다. / 편집자 주
 

 

얼마 전 한 모임에서, “고등학교 선생을 20년 넘게 했으니깐 잘 알고 있겠지만···”이란 전제하에 “자식을 명문대에 보내기 위한 세 가지 조건이 뭔지 알아요?”란 질문을 받았다.

 

나는 한참 동안 고민했다. ‘명문대 가기’가 아닌 ‘명문대 보내기’란 단서가 마음에 걸렸고, 전직 고등학교 교사인 나에게 하는 질문이라 학교나 선생님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아 괜히 자격지심마저 느끼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그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나를 보다 못해 질문을 던진 그녀가 내뱉은 답은 이랬다.

 

첫째, 할아버지의 재력(財力). 둘째, 아버지의 무관심. 셋째, 어머니의 교육열과 정보력.

 

그 말을 듣는 순간 멍했다. 같이 앉았던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하였지만 나는 둔탁한 뭔가에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했고, 누가 내 귓가에 대고 소리를 지른 것처럼 귀마저 윙했다.

 

“맞잖아요. 돈이 있어야 학원이다, 족집게 과외다, 뭐다 뭐다 시킬 건데 그 돈이 어디서 나오겠어요. 다 할아버지 잘 만난 덕이지.”

 

그녀는 자신의 경험까지 보태가며 그 내용들을 주워섬기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그녀의 말에 박수와 웃음을 보내는 주변의 반응에 심한 거부감을 느끼면서, 아버지의 비애를 느껴야 했다.

 

이 우스개답지 않은 우스개에는 아버지의 자리가 없었다. 아버지는 무능한(無能漢)이자 있으나마나 한 존재였고, 아버지가 나서거나 참견하는 순간 자식들의 장래는 끝장이라는 불온한 사상까지 담겨 있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리 틀린 말이 아닌 게 아버지인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자식에 대한 교육과 관리는 거의 어머니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특히 자식을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서는 어머니가 발 빠르게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맞춤식 교육(?)에 과감하게 투자할 때 가능해진다고도 할 수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교육열(?)이 없으면 자식을 명문대에 진학시킬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엄친아’를 강조하며 자기 친구 아들보다 나아야 한다고 아이들을 들볶아야 명문대에 진학시킬 수 있다. 그러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우스개에는 아버지(남자)에 대한 거부의 뜻이 담겨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어머니(여자)란 의미는 차치하고, 자식 관리 및 교육은 어머니가 다 할 테니 다른 사람들은 끼어들지 말라는 경고를 담고 있는 것이 이 우스개의 핵심이다. 할아버지는 돈이나 많이 모아 두었다가 제때 대주고, 아버지는 뒤로 물러앉은 채 가만히 있으란 말이다. 명문대에 진학시키기 위한 조건을 빙자하여 바보 아버지를 만들어내고 있고, 모든 아버지를 바보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으로 낙인찍고 있는 것이다.

 

자식을 명문대에 보내기 위한 첫째 조건이 돈 많은 할아버지란 사실이 아버지의 무능을 부각시킨다. 또한 할아버지가 무능하면 손자들까지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당위성을 부각시켜 모든 책임을 할아버지에게 전가하고 있다. 농투성이로 살다 개발붐이 일어 하루아침에 억! 소리를 내는 벼락부자가 되었든, 온갖 투기에다 탈세와 비리를 저지르며 돈을 쓸어 모았든,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을 들으며 고위직에 앉아 돈을 끌어 모았든 간에 할아버지의 첫째 조건은 돈이다. 산업사회의 샐러리맨일 수밖에 없는 아들로서는 모을 수 없는 돈을 쥐고, 무능한 자식을 대신해서 늙어서도 며느리나 손자에게 돈을 대주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손자들이 잘되는 것을 꿈도 꾸지 말라는 경고를 담고 있다.

 

 

아버지의 무관심이란 말엔 그야말로 현재 아버지들이 처한 입장을 극명히 보여준다. 자식 공부를 위해 마누라가 무슨 짓을 하든, 누굴 만나 몇 시에 들어오든, 얼마만큼의 돈을 어디서 조달하고 어떻게 쓰든 신경을 끄라는 경고의 메시지다. 마누라나 자식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거나 개입하는 순간 자식의 명문대 진학은 포기하라는 것이다. 죽으로 가만히 있다 명문대에 진학하거든 수고했다고 칭찬이나 한 번 해주고, 명품이나 하나 사주라는 말이다. 아버지를 무능한(無能漢)으로 치부하는 것을 넘어, 투명인간 취급을 하고 있다. 있으나 없는 것처럼 살라는 경고의 메시지다.

 

요즘의 아버지는 무능한(無能漢)이다.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났고, 민주화 운동을 하느라 직장다운 직장도 제대로 얻지 못했다. 직장을 얻었다하더라도 조퇴다 명퇴다 해서 직장에서 내쫓기기 일쑤고, 내쫓기지 않더라도 사오정처럼 “나는 못 들었네”로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아버지가 가정에서마저 버려지고 있다. 투명인간처럼 눈에도 띄지 말라는 것이 이 우스개 아닌 우스개에 담겨 있다. 이 농담 아닌 농담에는 현재 우리나라 아버지의 위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과연 아버지란 존재는 자식들에게 아무런 필요가 없는 존재이고, 자식들에게 해나 끼치는 존재일까? 그 농담을 들은 후 나는 이 화두를 놓고 씨름을 해야 했다. 그리고 내가 얻은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내의 자리와 어머니의 자리가 필요하듯이, 남편의 자리와 아버지의 자리도 필요하고 그 자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요즘 같이 혼란이 없는 평화 시에는 연예인이 스타이고 아내나 여자가 주인공일지라도, 환란에 처했을 때는 전사(戰士)가 스타이고 남편이나 남자가 주인공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이런 이분법적 사고가 아니더라도 남자와 여자,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조화 속에서 가정은 완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내나 어머니가 없는 가정이 절름발이 가정이듯이 남편이나 아버지가 없는 가정도 절름발이 가정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으면서 나는 포기란 것을 배웠다.

 

  첫째가 태어나면서 포근한 잠자리와 단잠, 나만의 시간을 포기해야 했다. 아이가 기기 시작하자 생생한 두 다리를 버리고 무릎으로 말(馬)로 기어야 했고, 말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 나의 언어를 버리고 아이의 말을 배워야 했고, 걷기 시작하자 아이에게는 너무나 큰 내 신발을 넘겨야 했고, 밥을 먹기 시작하자 맛난 것은 넘겨야 했다.

 

  심지어는 화장실까지 쫓아오는 아이를 위해 지리기도 했고, 변기마저 나눠 써야 했다.

 

  그리고, 아이는 내가 포기하는 만큼씩 자라기 시작했다.

 

  둘째가 태어나자 나는 또 새로이 포기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아이의 슬픈 눈망울 때문에 아내와의 다툼을 포기해야 했다. 아이의 눈물처럼, 울음처럼 큰 힘을 가진 것이 부모에게 또 있을까. 그리고 아내와의 극한의 대립으로 이혼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자리에서도 물러서야 했다. 아무리 못된 아내라 해도 내 아이들에게는 가장 자애로운 엄마요, 아무리 못나고 괴팍한 나지만 아이들에겐 단 하나뿐인 소중한 아빠가 아닌가.

 

  남들과의 싸움도 줄여야 했다. 내가 당하는 것들은 눈 한 번 꾹 감고 넘기겠지만, 내 아이들이 당하는 것은 견딜 수가 없었다. 세상의 해코지를 참아낼 수가 없었다.

 

  마흔이 넘어 늦둥이 아들을 보면서 나는 이제 더 이상 포기할 것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키워 왔던 나만의 것들을 아이들에게 하나씩 넘겨주고 나는 조용히 늙어 가고 있었다. 늙는 것마저도 내 마음대로가 아니었다. 아이들의 나이에 맞춰 늙어 가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얽매여서가 아니라 자유롭기 위해 나를 포기하고 있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쌓아 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 나를 하나씩 버려 가는 것.

 

  그리고 아이들은 위대했다. 부모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아이들이었다. 부모는 아이들을 통해서만 나이를 먹고 세상을 배우고 있었다. ―졸시 「못난 아비의 노래․4」 전문

 

아내는 “아내와의 다툼”과 “이혼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자리”란 구절을 근거로 ‘자신을 고려하지 않는, 오로지 자식만 생각한 시’라고 평가 절하했지만, 나는 내 심정을 가장 진솔하게 표현한 시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모든 아버지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한다. 다만 표현하지만 않을 뿐, 아버지 또한 자식들을 위해 자신을 꿈과 삶을 포기하기도 하고 자신의 생명까지 내놓기도 한다. 그런데도 세상이, 현실이 그런 아버지를 투명인간 취급하고 있는 건 너무 무례한 일이라 생각한다.

 

아버지, 아버지란 존재, 아버지의 삶을 돌아보고자 마음먹은 것은 이런 일련의 생각들 때문이다. 아버지를 바로 세우지 않고는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바로 세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아버지인 나부터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는 강박감도 한 몫을 한 게 사실이다. 나도 언젠가부터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뒷방늙은이 취급을 받고 있고, 거치적거리는 존재 정도가 아니라 투명인간 취급을 받고 있으니까.

 

아버지를 생각하다 떠올린 우스개가 하나 더 있다. ‘남편의 세 가지 이름’이란 우스개다. 이제 남편(남자)은 집에서 밥을 먹을 때조차 눈치를 봐야 하는 신세로 전락해버렸음을 극명히 보여주는 씁쓸한 우스개다. 그러나 아내들―특히 노년기에 접어든―의 솔직담백한 마음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그냥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것 같다.

 

하루에 세 끼를 꼬박꼬박 집에서 먹는 남편의 이름은? 삼식이.

 

하루에 두 끼만 집에서 먹는 남편의 이름은? 이식 씨.

 

하루에 한 끼만 집에서 먹는 남편의 이름은? 일식 님.

 

그렇다면 집에서 밥을 먹지 않는 남편은 무식대왕님일까? 무식(無食)과 무식(無識) 사이에서 나는 씁쓸함을 맛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성준은?

 

=제주 출생. 제주대 국어국문학과를 거쳐 단국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작가회의, 단국문인회 회원이다. 제주와 경기도에서 20여년 간 고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시인으로도 등단, <억새의 노래>, <못난 아비의 노래>, <나를 위한 연가>, <발길 닿는 곳 거기가 하늘이고 세상이거니> 등의 시집을 펴냈다. 최근엔 창작 본풀이 <설문대할마님, 어떵 옵데가?>와 소설집 <달의 시간을 찾아서>를 내기도 했다. <이청준과 임권택의 황홀한 만남>, <이야기로 풀어가는 우리 시조>, <읽기만 하면 기억되는 고사성어 365>, <글쓰기의 이해와 활용>, <통섭의 자리에 서서> 등 다양한 전문서적을 펴내기도 했다. 1년 전 고향 제주에 돌아와 제주 관련 글들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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