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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목사가 본 하멜, 베트남 표류, 탐라10경은?제주목사 이익태 ··· '지영록' 집필로 동북아 제주의 지정학 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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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4.15  19: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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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목사 이익태지영록

제주목사 이익태(李益泰:1633~1704)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대유(大裕)다. 1668년(현종 9)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고, 제주목사로는 1694년(숙종 20) 이기하(李基夏)의 후임으로 부임하여 1696년(숙종 22) 9월에 물러났다.

1. 지영록의 ‘표류기’

‘당시 목사는 이원진, 판관은 노정, 대정현감은 권극중이었다. 계사(1653년;효종4) 7월 24일 서양국만인(西洋國蠻人) 헨드리크 얀센 등 64명이 함께 탄 한 배가 대정현 지방 차귀진 밑의 대야수(大也水) 연변에서 부서졌다. 익사자 26명, 병사자 2명, 생존자 36명이었다.’

목사 이익태가 지은 지영록 ‘서양국표류기’의 첫머리에 기록된 내용이다.

‘켈파르트’로 제주를, ‘꼬레’로 조선을 서양에 처음 알린 네덜란드인 헨드릭 하멜. 14년간 이역의 하늘 아래서 겪은 경험과 애환, 조선의 지리 풍속 정치 군사 교육 등 제반사정을 『하멜표류기』를 통해 서방세계에 최초로 알렸던 그의 막연하던 표착지(漂着地)가 이렇게 지영록의 ‘서양국표류기(西洋國漂流記)’에 버젓이 실려 있기에 이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 의해 지영록은 지금까지도 지방사를 공부하는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역사학자들까지 지속적으로 찾는 대상이다.

지영록을 역주한 향토사학자 김익수 선생은 대야수에 대해 이렇게 주를 붙여 설명하고 있다.

‘대야수포는 원래 고산 한장의 대물(또는 대아물)의 한자표기다. 고산 한 장과 도원에서 대물을 길면서 논깍포구를 대야수포(大也水浦)로 불렀으나 19세기 이후는 지도상 주로 돈포(敦浦)로 표시되어 있다. 문맥으로 보아 난파지점은 고산리(高山里) 한장과 신도2리(新桃二里) 사이 해변으로 추정된다.’

지영록에는 표류기와 관련하여 하멜의 서양국표류기 외에 1687년(숙종 13년) 제주진무 김대황(金大璜) 등 24인이 안남국(安南國:베트남) 표류에 대한 전말을 기록한 ‘김대황표해일록(金大璜漂海日錄)’은 300여년이 난 세월 속에서도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맛이 제대로 드러난다.

   
▲ 탐라순력도 중 한라장촉(부분)
진상마(進上馬) 3필을 싣고 9월 3일 화북포를 떠난 김대황 일행이 추자도 앞에서 동북풍을 만나 31일 동안 표류하다 안남국 회안부에 도착, 조선의 상인이라 속여 목숨을 구하고 관청의 보호를 받다 안남국왕의 허락을 얻어 쌀 6백포를 지급할 것을 중국상인과 약속하고 다음해 12월 9일 서귀포에 상륙할 때까지의 과정을 극적으로 묘사해 놓았다.

이와 관련하여 김대황 일행을 베트남에서 싣고 제주에 왔던 뱃사람 중 복건성 사람 설자천(薛子千) 등이 북경을 통해 돌아간 지 3년 후에 사례(謝禮)의 명분으로 다시 제주를 찾아왔던 일의 전말을 기록한 남경청인설자천등이진사기(南京淸人薛子千等以陳謝記)도 등재되어 있다.

김대황의 표류가 당시 조선이 일본과 같이 개방적이었다면 안남국과의 통상무역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빠져들게 하는 이야기이다.

이외에도 지영록에는 제주에 표착한 중국인과 일본인의 표류기 수편이 실려 있다.

 2. 영주10경의 시작, 탐라10경

 ‘앞 사람들의 족적이 닿지 않았던 곳을 자세하게 조사하고 제주를 두루 밟으며 그 중에서 뛰어난 10경을 … 한 개의 자그만 병풍을 만들어 내고 그 윗면에 그 사적(事跡)을 서술하고 보기에 편리하도록 하였다.’

지영록 ‘탐라십경도서(耽羅十景圖序)’에 서술된 이익태의 글이다. 이익태는 조천관 별방소 성산 서귀포 백록담 영곡(영실) 천지연 산방 명월소 취병담 등의 10곳을 10경으로 선정하였다. 그리고 각각을 화폭에 담게하여 병풍으로 만들고 그 풍광에 대한 해설을 덧붙여 써 넣었다다. ‘탐라십경도서’은 지영록에 전하는, 이익태 자신이 품제(品題:논하고 평한 글)한 탐라십경에 대한 해설이다. 현재 제주의 대명사로 불리어지는 ‘영주십경’이 조천읍 신촌리 출신의 매계 이한우(李漢雨:1818~1881)에 의해 품제 되기 훨씬 이전이다. 김익수 선생은 탐라십경 중 3점은 일본에, 4점은 우리나라에 남아있다고 해설한다.

여하튼 제주의 10경에 대한 품제는 이익태 목사에서 비롯되었다 할 것이다. 이후 18세기 초 병와 이형상(李衡祥:1702년 도임)은, 한라채운(漢拏彩雲) 화북제경(禾北霽景) 김녕촌수(金寧村樹) 평대저연(坪垈渚烟) 어등만범(魚等晩帆) 우도서애(牛島曙靄) 조천춘랑(朝天春浪) 세화상월(細花霜月)을 팔경으로 꼽았다. 헌종 때 목사로 왔던 응와 이원조(李源祚)는 영구상화(瀛邱賞花) 정방관폭(正房觀瀑) 귤림상과(橘林霜顆) 녹담설경(鹿潭雪景) 성산출일(城山出日) 사봉낙조(紗峰落照) 대수목마(大藪牧馬) 산포조어(山浦釣魚) 산방굴사(山房窟寺) 영실기암(靈室奇巖)을 10경으로 꼽았다. 이러한 탐승(探勝)의 자취가 매계 이한우에 이어져 영주십경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3. 지영록 저술 목적

이익태는 어떤 연유로 지영록을 남겼을까? 이익태는 지영록의 서문을 통해 지영록을 지은 연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원교(圓嶠:한라산)의 전 지역은, 바로 바다 가운데서 이름난 지역으로 저 하늘 밖의 웅대한 변방이라고 옛 사람들이 모두 말하였다.

김충암(金冲庵:金淨 1485~1541)의 풍토기, 김청음(金淸陰:金尙憲 1570~1650)의 남사록, 임백호(林白湖:林悌 1549~1587)의 남명소승, 이어은(李漁隱:李元鎭 1594~?)의 탐라지에 각각 그 듣고 보았던 것들이 여러 글에 거듭 나와 자세함과 간략함이 비록 다르기는 해도 실낱같이 자세하게 남김없이 하였으므로 굳이 더 보탤 말이 없음을 역력히 알 수 있다.

비록 그렇더라도 사물이 사람에 따라, 때에 따라 세상과 더불어 변하고, 고금이 다른 것은 마땅하다. 연혁이 무상한 즉 또한 전후의 흥폐(興廢)가 없다고 말할 수 있으랴.

상감[肅宗] 21년(1694) 갑술에 재주가 부족한 사람을 지주(知州:목사)로 뽑아주어, 3년을 직을 맡으며 아무것도 선정을 하여 아뢴 것이 없었다.

그러나 민간의 질고(疾苦)며, 물산의 피폐함, 방호의 이로움과 해로움에 간혹 사물에 정통하게 익숙하지 못한 것이 없었으나 애석하게도 탐라 안에 전대에 부합하는 문헌이 부족하고 사적(事蹟)이 자세하지 않아 묘연하였고 기승(記乘;史書)을 구할 수가 없었다.

기록하기로 뜻을 둔 후에 오히려 기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쓸쓸히 이곳에 있던 3년이었고, 그 아주 오랜 것은 뚜렷하지 않고 전해지는 것이 없으므로 몰래 염려가 되었지만 일기를 편집하고, 등록(謄錄)을 참작하여 사이사이 자기의 뜻을 붙여 이름을 지영(知瀛)이라 하였다. 누적된 폐단을 좋게 바꾸고 잘못된 치정(治政)을 고쳐서 뒤에도 지금을 이어주기를 기대하여서이다.’

1696(숙종 22)에 이익태가 직접 쓴 서문이다. 세종 때 최해산 목사 당시 목관아가 전소(全燒) 되면서 그때까지의 문적(文籍)도 모두 사라져 버린 이후 김정, 임제, 김상헌, 이원진 등이 제주의 역사와 풍속, 풍토 등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그 이후 도임한 이익태 목사가 지금까지의 기록을 종합하고 그 이후의 일들과 당시의 실정을 기록하여 ‘누적된 폐단을 좋게 바꾸고 잘못된 치정(治政)을 고쳐서 뒤에도 지금을 이어주기를 기대’하며 이익태는 지영록을 저술하게 된 것이다.

글,사진=백종진/ 제주문화원 문화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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