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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필의 세상훑기(17)···유행어로 웃음을 구하는 현실

 1995년 2월의 어느 날. 한국 신문사상 특이한 일이 벌어졌다. 한 주요 일간지의 사회면 톱기사로 TV드라마가 올랐다. 최민수ㆍ고현정이 나오는 ‘모래시계’를 보려고 직장인들 귀가시간이 빨라졌다는 기사였다. 경쟁 언론기관이기도 한 방송사 관련 뉴스를 크게 보도하지 않던 신문의 관례를 깬 ‘사건’이었다.

 

 남자들은 드라마를 보면서도 밖에 나가선 “집사람(부인)들이나 보는 것”이라며 좀처럼 입에 담지 않던 때였다. 이후 TV드라마 혹은 연예오락프로의 유행어까지 신문 제목으로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독자들 관심을 끌기에는 이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오래전 일이다. 모신문사 편집국장이 편집기자가 달아온 제목을 이해하지 못해 망신을 당한 적이 있다. 당시 유행어를 가미한 제목을 접한 그가 “무슨 제목이 이러냐?”며 핀잔을 줬다. 그러자 주위의 다른 기자들이 국장 얼굴을 한심한 듯 쳐다봤다. 그 국장은 저녁에 취재원을 만나는 게 기자의 주요 덕목으로만 알았지 TV 등을 통해 유행을 감지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몰랐던 것이다. 이후 그는 인기드라마와 인기가요 가사까지 수시로 챙겼음은 물론이다.

 

 연말이 되면서 인터넷과 SNS에서 올해의 연예계 유행어 뽑기가 한창이다. 개콘(개그콘서트)이 유행시킨 말들이 상위권을 휩쓸고 있다. 개콘의 무서운 영향력이 느껴진다. 어떤 이는 일요일 밤 개콘을 보면서 한 주일을 마감한다고까지 말하지 않던가.

 

 

 개콘 시청률은 항시 20%대를 달리고 있다. 공중파 외에도 채널이 수십 개인 요즘, 놀라운 시청률이 아닐 수 없다. 한 종합편성채널에서 모 프로가 시청률 3.5%를 기록했다며 “잭폿이 터졌다”고 호들갑을 떠는 때다. 채널 3~4개가 고작이던 1990년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사랑이 뭐길래’(1991년) 59.6%,‘아들과 딸’(1992) 49.1%, ‘허준’(1999) 48.3%, ‘모래시계’(1995) 46.3%에 필적할 만하다.

 

 올 한해 개콘은 많은 유행어를 쏟아냈다. “궁금해요? 궁금하면 500원”(거지의 품격), “고뤠?!”(비상대책위원회), “사람이 아니므니다”(멘붕스쿨), “기분 좋다고, 소고기 사묵겠지”(어르신) 등.

 

 특히 ‘궁금하면 500원’과 ‘고뤠?’는 길거리 현수막도 빌려쓰는 실정이니 개콘을 보지 않고선 광고도 이해하기 쉽지 않다.

 

 가끔은 연예인들이 유행어를 만들어 내려고 너무 안달하는 게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다. 인기 유지를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시청자 시선이 모이는 공중파를 가지고 너무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닌가 느낄 때도 있다.

 

 반복해 노출시키면 아무리 어이없는 말도 중독성을 가지고 사람의 뇌리를 파고든다. 그렇다고 이런 유행어의 능력을 깎아 내리려는 건 아니다. 오랜만에 만난 고교 동창생들과의 송년회, 그래도 웃음을 터지게 하는 건 서툰 유행어 흉내다. 생각이 다를지 몰라 대선 얘기도 삼가고, 혹 낙담하는 친구 있을까 자식 자랑도 참아야 하는데, 유행어는 대화 소재가 궁할 땐 가뭄 속 단비처럼 고맙다.

 

 그렇다고 어떤 이처럼 이들 유행어를 해설까지 붙여가며 미화하고 싶진 않다. “소고기 사묵겠지”라는 심드렁한 말투 반복이 ‘변화 없는 현실’을 나타낸다는 둥, 상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 뒤 “궁금하면 500원”하며 품위 있게 생계를 유지하는 거지의 품격이 드러난다는 둥.

 

 왜냐고? 유행어에서 웃음을 구하는 현실이 초라해도 너~무 초라해 보이니까.

 

   은근한 멋이 담긴 유머가 그립다.

 

조한필은?=충남 천안 출생. 고려대 사학과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한국고대사를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 중앙일보 편집부·전국부·섹션미디어팀 기자를 지냈다. 현재는 충청타임즈 부국장 겸 천안·아산 주재기자로 활동하면서 공주대 문화재보존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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